라이프/문화

[수필] 삼세판의 유연함

최지원 갈등전문기자(mentalip@naver.com)

어머니도 외로움을 타시고 연로하시니 두 달에 한 번씩 친정에 간다. 갈 때마다 아버지 산소에 들르니 아버지를 뵙는 주기도 자연스럽게 두 달이 된다. 살을 부비거나 농담을 건넬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 묵묵히 계시며 나를 지켜봐 줄 것 같아 그 공간이 참 좋다. 다녀오는 길이면 마음이 온기 가득해진다. ‘아버지도 지켜보고 계시니 더 웃으며 재미나게 살자’ 다짐을 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오고 갈 때 마땅한 대중교통이 없어 멀리 사는 곳까지 택시로 이동한다. 갈 때는 문제가 안 되지만, 올 때는 조금 한적한 곳이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번 그랬다. 두 번 연속으로 택시를 잡지 못하자 납골당 사무실에서는 셔틀용 봉고차를 타고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으라는 해결책을 일러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택시를 부를 엄두조차 내지 않고, 봉고차를 타고 내려와 다시 택시를 잡는 방식을 고수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노모를 모시고 걷고, 더위에 편의점을 들락거려야 하는 번거로운 이동이 루틴처럼 굳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렇게 움직이던 중이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영문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어디서 나오는 길이에요? 뜬금없는 곳에서 택시를 잡으시기에.”

나는 납골당 이야기를 꺼내며, 택시가 안 잡혀 큰 길로 내려와 잡는 것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내 말을 받아치며 뜻밖의 소리를 던졌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변화가 빠른데요. 왜 다시 해볼 생각을 안 하셨어요? 그곳에서 그냥 택시를 부르면 되지, 왜 이렇게 이중으로 고생을 하십니까.”

띵!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두 번을 해봤는데 안 되던데요.”

나의 대답에 아저씨는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두 번은 어찌 우연히 지나가는 택시가 없었던 거지요. 택시는 무조건 있습니다. 요즘은 손님이 부르면 강제로 배차되는 시스템도 있는데 택시가 없는 게 말이 됩 니까?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확신을 해요? 제 나이가 어때 보여요? 저도 이래 보여도……”

기사 아저씨는 자신의 과거 이력과 나이까지 읊으며 답답해했다. 50대인 나를 ‘젊은 사람’이라 칭하며 건네는 핀잔 속에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니 부끄러웠다. 겨우 두 번 겪어보고 ‘여기는 멀어서 택시가 안 잡힌다’는 단단한 편견을 스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편견이란 참으로 쉽게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의 잔소리가 처음엔 반감으로 다가왔지만, 곱씹을수록 깊은 가르침이 되었다. 내리면서 감사 인사를 건네자, 아저씨는 잔소리로 들렸을 텐데 잘 들어주어 고맙다며 화답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점심 메뉴로 짜장면과 짬뽕을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직업을 바꾸거나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중대한 결정까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가장 강력한 지침으로 삼는다. ‘그때 그 집은 된장찌개가 너무 짜서 다시는 안 간다’거나,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은 이런 단점이 있었으니 사람 겪어봐야 뻔하다’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빠른 결정의 이면에는 ‘빠른 편견’이 숨어 있었다. 편견과 선입견을 지양하자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내가 정작 편견에 가장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유독 된장찌개가 짰을 뿐이고, 그날 유독 그 사람의 컨디션이 나빴을 뿐인데, 단 한 번의 얄팍한 경험으로 선택지에서 가능성을 싹둑 잘라내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가. 하물며 사람과의 관계나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겪은 단편적인 상처를 전부라 믿고 새로운 인연이나 기회를 밀어내는 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가.

모든 것은 ‘삼세판’이라 했다. 사실 세 번이라는 숫자 역시 객관적으로 보면 결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삼세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 두 번의 섣부른 실패로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기 위한 최소한의 유예 기간이자 한 번 더 품어보는 성의일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을 만나도 세 번은 보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게 아니듯, 한 면만 보고 돌아서기 전에 여러 각도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더 많은 선택지와 가능성을 품게 된다.

오늘 그 시간에 택시가 안 잡혔던 것은 그저 그 시간의 우연일 뿐이다. 과거의 섣부른 경험이라는 감옥에 갇혀 오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오늘도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

‘현재를 살아라. 오늘 택시가 안 잡힌 거라면, 다음에 다시 시도해 보면 그만이다.’